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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 일상(구)/매기의 추억

평화와 소통의 도구--- 붉은 애송이 '밥 말리'

 

 

 

 

 

 

 

 

 

 

 

 

 

 

 

 

 

 

 

 

 

 

 

 본격적인 더위 기세가 고빗사위다.

"더워서 더위에 지치는 것도 피서지!"라며

너부러지는 지인의 모습이 오히려 더위를 베어

무는 듯 여유있어 보기 좋다.

짙 푸른 산 계곡과 소금기 가득한 바다의 시절이다.

그런 곳에서 듣는 음악이야 다 좋겠지만 시원하고 낙천적인 '레게'음악이라면 더욱 흥겨울 것이다.

 

 

 지난 20일 레게의 전설 '밥 말리'의 삶과 음악을

다룬 다큐 <말리>의 시사회가 있었다고 한다.

8월 2일 개봉하기에 앞서 그의 음악을 다시 들어보며 더위를 잠시 잊는것도 피서이리라.

 

    

 

 

 

 

서인도 제도에 있는 조그만 섬나라 자메이카.

영연방의 작은 섬나라가 세계 대중 음악사에 차지하는 어떤 비중도 갖지 못했으나 밥 말리(Bob Marley)를 통해 한 획을 긋는다. 

 

말리는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의 '트렌치 타운'에서 자랐다.

트렌치 타운은 가난하고 치안의 행정력도 미치지 못해 범죄에 아주 취약한 슬럼가였다.  

철저한 흑인 중심 사회에서 영국 군출신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말리는 붉은 피부색 탓에 놀림과 배척을 당하기 일쑤였다.

더욱이 사회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대라 뒷골목 부랑아로 산다는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싸움을 일삼아 거리를 누비는 말리였지만 그 속에서의 체험으로 흑인들의 '박탈감'을  깊게 인식했으며 그시절 기억은 후에 노래하는 메세지의 고갱이가 된 듯하다.

 

 

 

 

 

 

 

 

       그때 기억을 담은 노래 'NO WOMAN NO CRY' 이다.

 

 

"트렌치 타운 관청의 뜰앞에서 위선자를 응시하던 때가 생각나네

그들이 친구들 속에 끼어 있을 때 우린 항상 좋은 친구를 잃었지

과거는 잊을 수 없어.눈물을 말려요.여인이여,울지 말아요."

< NO WOMAN NO CRY 가사 중에서 >

 

 

 

 

자메이카에 '스카리듬'이란게 있다.

자메이카인들은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 음악을 접한 뒤 민속 음악인 멘토와 R&B, 거기에 관악기 소리를

포함시켜 흥겨운 느낌을 주는 '스카'리듬을 만들었다.<네이버 지식사전>

 

말리는 이 스카리듬을 2박자,4박자를 강조하며 좀 더 느리고 묵직하지만 경쾌한 비트로써 바꾼

'레게'리듬을 수단으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한다. 

노래의 메세지는 흑인해방 사상과 자신들의 고향이자 약속의 땅인 '아프리카로 돌아가자'이었다.

자신 심취한 '라스타파리아니즘'의 종교적 신념인것이다. 

 

 

말리는

노래의 운동적 가치를 확신했다.

 

"음악으로써 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하지만 깨우치고 선동하고

미래를 듣게 할 수 있다" <밥 말리>

 

이처럼

아프리카를 조국으로 아프리카인들이 단결하고 각각의

국가가 독립하기 위해  기득권자와 싸우는 정신을 세계로 알리며

'제 3세계' 음악적 태동을 예고했다.

 

 

 

자메이카에서 사회주의 노선과 친미적 노선과의

대립이 한창일때,말리에게 '너는 어느 편인가?'

밝히라는 요구를 대중들로부터 받았고 그는 거절했다.

 (실은 사회주의 노선인 인민 국가당을 지지했다) 

그러던 차에 괴한의 총격으로 팔 관통상을 입은 말리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영국으로 망명가서

조국 자메이카로 돌아 오지않는다.

2년 지난 78년에도 자메이카는 사회주의 '인민 국가당'과 친미노선의'자메이카 노동당'은 여전히 유혈사태와 정치폭력에서

벗어나질 못했고 혼란의 정점이었다.

이때 정치 단체에서 이러한 혼란을 종식 시키기위해 공연을 개최했고,말리는 그곳에 참가했다. 여기서 'One Love'를 부르며 여당(인민국가당)과 야당(자메이카노동당)의 화해를 주선했다.

이때 말리는 노래가 끝나고 여당의 '마이클 맨리 수상과 야당 당수 '에드워드 시아가'를 무대위로 불러

손을 잡았다.

카리브해 조그만한 자메이카 섬에 갈등과 반목을 뒤로하고 '평화'가 도래함을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실로 감격적이며 역사적 순간이었고 이후 밥 말리는 세계적인 '평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음악인에게 그는 'One Love'를 통해 영웅으로 각인되었음은 물론이다.

 

 

 

 

 

다큐 멘터리 '말리'의 티져 영상

 

한때 우리 나라에도 '레게'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대표적 그룹으로는 '닥터 레게'가 있었고

김건모등이 레게리듬을 레퍼토리로 노래한 적이 있는걸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