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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 일상(구)

짧은 과거의 기억이 지금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지리산에서]


장터목에서 천왕봉 오르는 길


요즘 생각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항상 달고 사는 말이기는 하지만 설명도 정의도 어려운 단어이기도 하다. 일전 컨설팅을 주었던 회사의 연구 소장님과 차를 마시면서 오후 내내 마음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연세가 지긋이 드신 소장님이시다.

 

"윤선생 마음이 무엇 인줄 아나? 한자로 이라고 하는 말이야! 우리가 항상 쓰는 말이잖아. 마음이 아프다, 마음씨가 좋다~, 마음이 불편하다.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우리가 항상 입에 달고 사는 말이지, 그게 멀까?"  " 글쎄요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데요." 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나를 보고 웃으시며 화이트 보드에 생각(生角 )이라는 한자를 쓰시며 말씀 하신다. "생각의 다발이 마음이지. 그런대 말이야 대부분의 생각은 무엇과 관련 있는 알아?  생각은 기억(memory) 밀접하게 관련이 있지…….."

 

생각은 묘한 것이다. 삶의 모든 경험과 인식은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 리차드 칼슨이 그의 저서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에서 기술 것처럼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하는 행위이다. 생각의 주체가 나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생각의 부작용" 시달려 왔다. 내가 아닌 다른 이유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고 착각해 왔던 것이다마음이 불편한 이유를 애써 다른 이유를 찾는 동안 시시각각 생각이 나를 침몰시켜오고 있는 중이다.

 

생각을 버리기 위해 2 3일간의 지리산 비박종주를 결심하였다

세석대피소에서 장터목 가는길


지리산 종주를 너무 쉽게 본듯하다. 성삼재를 출발하여  천왕봉을 오르고 중산리로 하산하기 까지 35.5km 짧지 않은 코스이다. 연하천 대피소와 세석대피소에서 각각 1박씩 했다. 번의 봉우를 오르고 , 내리고 올랐는지 기억조차도 없다. 걷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없었다. 오로지 걸을 뿐이다. 생각을 버리기 위한 목적은 자연스럽게 달성 된 듯 싶다.


희미한 천왕봉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이제 너무 지쳐 걸을 힘조차 없다. 천왕봉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에 짐을 풀었다.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천왕봉을 멍하니 바라고 있다가 연구소장님과의 담소가 이어진다.

 

"윤선생 눈을 감고 지나온 생을 잠시  회상해보고 기억을 더듬어 보게. 지금 떠오르는 생애 첫 기억이 무엇인가?"

 

"6살 때쯤인가 엄마한테 야단맞고 울었던 발 동동구르며 울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나는데요? 왜 야단 맞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 다음 기억을 떠올려 보게,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기억을 시간 순으로 떠올려 보고, 사람을 중심으로도 떠올려보고, 사건을 중심으로도 떠올려 보게."

 

"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는 데요?"

 

"앞으로 일주일만 자기전에 한시간씩 지나온 생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게. 모든 것이 다 기억 날때까지 말이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체 기억을 회상하는데 몇분이나 걸리는 지 시간을 재어 보게나."

 

그후 2주가 흘러갔다. 점심식사를 하고 소장님 방에서 차를 마시며 다시 정담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소장님 말씀대로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봤는데요 채 20분도 되지 않던데요. 처음에는 전체를 회상하는데 한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마지막에는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기억을 다 떠올리는데 20분도 안결려요."

 

"윤선생 그게 바로 인생이야. 지나온 삶에 대한 기억을 스크린에 비춘다고 했을 때 , 돌이켜보면 그 상영시간이 20분도 안돼는 것이 우리의 삶이지.."

 

" 그런데 그 기억의 대부분은 어떤 것들이었나? 생각해보게. 여행을 하다 본 멋진 풍경이 기억 나던가? 여행하면서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던 것들이 기억 나던가? 수 많은 사람을 만나고 해어졌을 텐데 그 사람들 모두가 기억나던가? "

 

"아니요. 그런 것들은 하나도 기억나질 않아요."

 

"기억은 말이야 모두 희로애락(喜怒哀樂)관련이 있어, 기뻤고, 화났고, 슬펐고, 즐거웠던 것들만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지. 그런데 화나고 슬펐던 기억이 더 많지. 기쁘고, 즐거웠던 기억은 많이 남아 있질 않아. 남아 있더라도 그 기억 때문에 지금 슬퍼지게 마련이야."

 

"채 20분도 떠오르지 않은 짧은 지난 기억이 마음을 불편하게하고, 그 불편한 마음 때문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거야. 행복해지려면 이렇게 해봐."

 

"어떻게요. 소장님?"

 

"눈을 감고 날고 있다고 상상을 해 보는 거야. 그리고 방향을 바꿔 우주로 향해봐. 지금 막 대기권을 벗어 나고 있는 거야. 대기권에 걸터 앉아 지구를 내려다 보는 상상을 해봐. 얼마나 크게 보이겠나? 지금 우리가 이야기 나누고 있는 이곳은 어떻게 보이겠는가?"

 

"아주 작게 보이겠조, 그리고 이곳은 거의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래. 거기 앉아 이 곳을 향해 윤선생의 20분의 기억 하나씩 꾸깃꾸깃 접어 던져봐. 다 던졌으면 이곳으로 홀가분하게 다시 날아 오는 거야."

 

아무 생각없이 천왕봉을 바라보다가 소장님과의 담소를 나눴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만기 지난  기억을 하나씩 하나씩 지리산 계곡으로 던져 버렸다. 마음이 후련해지고 가벼워 진다.

 

천왕봉까지는 아직도 한참 남았다. 세석 대피소에서 하루밤을 더 묶을 예정이다. 해떨어지기 전에 세석에 도착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지는 기억은 차마 버리지 못한채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 다시 아무 생각없이 한 없이 걸었다.

 

사진/글 小山 윤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