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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 일상(구)

라면에 대한 윗세오름 추억 [한라산 산행기 9] EOS 60D


우리는 부산 거처 제주 가는 경비와 텐트 하나 달랑 들고 떠난 여행이었다. 경비도 떨어지고, 식량도 떨어졌다. 주머니에 5,000원 밖에 남지 않았다. 곽지, 협재 해변을 전전 하면서 직접 수렵한 바다고둥의 일종인 "보말"로만 끼니를 때운 터라 배가 몹시 고팠다. 라면이라도 먹자고 윗세오름 산장으로 들어갔다. 150원 하는 라면 1500원 받는다. 끓여주는 것도 아닌데 둘이 합치면 3,000, 우리는 입이 딱 벌어진 체 밖으로 나왔다. 산장을 나와 입구에 걸터앉아 둘이 물만 벌컥벌컥 들이키며 배를 채웠다. 105km 나가는 친구가 산장 주변에 돗자리를 편다 '나 더 이상 갈 힘도 없다. 여기서 죽을란다." 들어 누우며 배째라 나온다. 한숨 자고 나서 다음 일을 생각하자고 한다.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드디어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했다. 어리목 입구에서 거의 3시간 걸린 것 같다. 어리목에서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깔깔거리며 장난치며 오르면서 주변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무리가 있었다. 아마도 중년의 연인들 인 듯 싶었다.

그 중 제일 젊어 보이는 여자분이 아는 체를 하며 말을 건 낸다. " 빨리 가세요~, 더 늦으면 라면 못 먹어요". 해지기 전에 내려가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라면 그만 판다는 설명이다. 그 때 때마침 먼저 도착한 친구가 라면 불으니 서두르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 윗세오름


내 생에 가장 맛 있었던 라면은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때 이곳 윗세오름에서  먹었던 라면이다여름방학이 시작되자 마자 친구랑 둘이서 거의 무전 여행 하다시피 제주도를 걸어 다닌 적이 있다. 윗세오름에서 라면이라는 단어가 옛 추억을 다시 꺼낸다. 부산 진항에서 같은 페리를 함께 타고 온 부산 동의대생들이 생각난다. 우리는 도보로 제주 여행을 기획하고 떠났지만, 그 친구들은 자전거로 제주 일주를 한다고 했다. 페리 안에서 제주 한일소주와 함께 이런 애기로 밤을 보냈던 친구들이다.그 친구들을 윗세오름에서 만났다

▶ 백록담과 윗세오름

그 때 페리를 함께 타고 온 동의대 친구들이 백록담에서 내려오며 아는 체를 한다.  "여기서 또 보내예~~" , "성판악에서 올라왔는데예~~, 밥을 아직 못 먹어 배고파 죽겠습니더~~라면 한개 끓여 먹고 내려가야 겠습니더~~식사 안 했으면 같이 하입시다~~" 하며 돗자리를 펴고, 버너를 지핀다. 그 순간 친구와 둘이는 눈을 서로 마주쳐다. "이제 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 빛과 미소에는 같은 생각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이틀이나 밥 구경을 못했다는 둥, 보말로만 끼니를 때웠다는 둥, 돈이 떨어졌다는 둥 자초지종을 그 친구들에게 말했다. 그 친구들은 걱정 말라며 배낭에서 라면들 두 개 더 꺼내고, 쌀 두 줌을 더 꺼내어 함께 먹자고 한다. 정말 구세주들이었다. 그 친구들 코펠에는 라면을 끓이고, 우리 코펠에다 밥을 지었다. 순식간에 라면을 후루룩 들이키며,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 뚝딱 해치웠다그 때 이 곳에서 먹었던 라면 맛을 평생 잊을 수 가 없다.



먼저 도착한 친구가 컵라면을 사 놓고 기다렸다. 지천명이 거의 다 되어 윗세오름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그 때 함께 했던 친구애기를 나눈다. 몸무게가 105kg나 나간 그 시절 친구는 백록담 오르는 걸 포기했고, 나 혼자서 다녀왔다윗세오름을 통해 백록담 오르는 길은 폐쇄되어 오를 수 없다백록담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해지기 전에 내려오기 위해 영실로 하산을 재촉한다


사진/글 윤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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