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에 대한 윗세오름 추억 [한라산 산행기 9] EOS 60D
드디어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했다. 어리목 입구에서 거의 3시간 걸린 것 같다. 어리목에서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깔깔거리며 장난치며 오르면서 주변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무리가 있었다. 아마도 중년의 연인들 인 듯 싶었다.
그 중 제일 젊어 보이는 여자분이 아는 체를 하며 말을 건 낸다. " 빨리 가세요~, 더 늦으면 라면 못 먹어요". 해지기 전에 내려가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라면 그만 판다는 설명이다. 그 때 때마침 먼저 도착한 친구가 라면 불으니 서두르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 윗세오름
내 생에 가장 맛 있었던 라면은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때 이곳 윗세오름에서 먹었던 라면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마자 친구랑 둘이서 거의 무전 여행 하다시피 제주도를 걸어 다닌 적이 있다. 윗세오름에서 라면이라는 단어가 옛 추억을 다시 꺼낸다. 부산 진항에서 같은 페리를 함께 타고 온 부산 동의대생들이 생각난다. 우리는 도보로 제주 여행을 기획하고 떠났지만, 그 친구들은 자전거로 제주 일주를 한다고 했다. 페리 안에서 제주 한일소주와 함께 이런 애기로 밤을 보냈던 친구들이다.그 친구들을 윗세오름에서 만났다
▶ 백록담과 윗세오름
그 때 페리를 함께 타고 온 동의대 친구들이 백록담에서 내려오며 아는 체를 한다. "여기서 또 보내예~~" , "성판악에서 올라왔는데예~~, 밥을 아직 못 먹어 배고파 죽겠습니더~~라면 한개 끓여 먹고 내려가야 겠습니더~~식사 안 했으면 같이 하입시다~~" 하며 돗자리를 펴고, 버너를 지핀다. 그 순간 친구와 둘이는 눈을 서로 마주쳐다. "이제 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 빛과 미소에는 같은 생각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이틀이나 밥 구경을 못했다는 둥, 보말로만 끼니를 때웠다는 둥, 돈이 떨어졌다는 둥 자초지종을 그 친구들에게 말했다. 그 친구들은 걱정 말라며 배낭에서 라면들 두 개 더 꺼내고, 쌀 두 줌을 더 꺼내어 함께 먹자고 한다. 정말 구세주들이었다. 그 친구들 코펠에는 라면을 끓이고, 우리 코펠에다 밥을 지었다. 순식간에 라면을 후루룩 들이키며,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 뚝딱 해치웠다. 그 때 이 곳에서 먹었던 라면 맛을 평생 잊을 수 가 없다.
먼저 도착한 친구가 컵라면을 사 놓고 기다렸다. 지천명이 거의 다 되어 윗세오름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그 때 함께 했던 친구애기를 나눈다. 몸무게가 105kg나 나간 그 시절 친구는 백록담 오르는 걸 포기했고, 나 혼자서 다녀왔다. 윗세오름을 통해 백록담 오르는 길은 폐쇄되어 오를 수 없다. 백록담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해지기 전에 내려오기 위해 영실로 하산을 재촉한다
사진/글 윤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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