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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 일상(구)/인생노트

"사진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의 명제를 생각하며


전날 내린 비로 시원한 물줄기를 흘려 보내고 있는 이끼계곡


비 개인 후 하늘이 가져다 주는 깨끗함 때문에 또 비를 기다리는 지도 모른다. 활동하고 있는 사진 클럽(방문하기 ▶한국사진영상)에서 상동이끼 계곡으로 출사가 있는 날이다. 이 비는 한사영 식구들을 위해서 내린 양, 이끼계곡에 흐르는 물을 풍부하게 해주어 다행이다. 물 흐름을 담을 수 있는 가변 ND필터를 오래 전부터 장만 해 놓은 지 오래 된 터라 기대 되는 출사이다. 푸른 이끼와 흐르는 물을 먼저 멋지게 담을 욕심에 잰 걸음으로 계곡을 향했다. 


계곡 입구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 조차 힘들 것 같은 노인 한 분이 카메라를 목에 건채로 털썩 주저 않으시는 모습이 보인다. 기력이 다한 몸에서 나오는 헐레벌떡한 숨소리가 길을 재촉하는 내 귀에도 선명하게 들린다. 


" 저 노인네는 뭘 찍으러 여기까지 온 거지?"



2012년 4월 창경궁 온실에서 사진찍고 있는 할머니


이런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난 봄 창경궁 춘당지 뒤편에 있는 온실에서 본 할머니가 떠오른다. 병색이 완연하고 손까지 떠는  할머니 한 분이 홀로 창경궁 온실을 찾았다. 떨리는 손에는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가 쥐어져 있었다. 오래 사실 것 갖지 않아 보이는 할머니께서는 온실에서 막 피기 시작한 꽃에 대고 열심히 셔터를 누르시며 온실을 다니시고 계셨다. 


"저 할머니는 왜 혼자 와서 저렇게 열심히 꽃을 찍고 계시는 걸까?"


코끝이 찡해졌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저 두 분의 카메라 속 메모리는 잘 찍은 사진인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에게 중요한 의미가 닮긴 좋은 작품이 들어 있을 것으로 믿고 싶다.  


"난 멀 찍지?" 갑자기 과제가 주어진다. 이미 와있는 다른 클럽 버스 벌써 사진을 찌고 있었다. "버스 두 대가 카메라 부대를 떨구어 놓았고…., 저 할아버지도 가장 소중한 사진을 담겠다고 오셨을 텐데.. " 갑자기 이들보다 더 잘 찍을 자신이 없어졌다. 


한 회원과 같이  계곡 물길 가운데로 거슬러 올라가며 셔터 연방 눌러보지만 마음에 드는 샷은 하나도 없다. 아직도 사진초보인 나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는 그 회원에에게 대충 대답은 했지만 "대략남감"이다. 시간이 되어 끝까지 올라가지 않고 초입에서 대충 마무리하고 버스에 다시 몸을 싫었다. "머~~ 건진게 없네잉~~"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서 찍은 사진을 돌려보면서 "그래도 한 두 장은 그런대로 괜찮네~, 역시 카메라 값과 렌즈 값은 하네~~"하며 속으로 혼자 말을 하고 있을 때이다. 

클럽에서 1년 과정으로 무료로 운영하는 사진대학 예비 입학생인 한 신입 회원이  1기 졸업생에게  카메라의 기능에 대하여 물어보고, 그 선배 회원이  열심히 설명해주는 소리가 들린다. 


이끼계곡 입구 폭포처럼 흐르는 물


"어라~ 내가 6기 신입생 보다 기능 공부를 더 안 했네..……."  카메라에 내장되어 어 있는 소프트웨어적 특성과 카메라의 렌즈의 기계적 특성을 이해하면 분명 사진은 잘 찍는 것 같다. 특히 좋은 카메라와 좋은 렌즈로 찍으면 쨍 하고 멋있는 사진이 나온 것 같다. 마치 내가 찍은 것 처럼. 사실은 카메라가 찍어준 것인데도 말이다. 


"내가 찍은 사진은 분명 계곡 입구에서 주저 않은 노인과, 창경궁 온실의 할머니 보다의미가 있는 사진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두 부분의 사진은 내가 찍은 아름답고, 화려하고, 멋진 쨍 한 사진보다는 다른 함축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분명할 것 같았다. 겉으로는 장엄해 보이는 이끼계곡과, 예쁘게 담은 꽃 사진과는 다른 살아온 인생을 담았을 테니 깐 말이다.


외시적으로는 얼마전 다녀온 얀 샤우덱의 사진이나 앙리 브레송 사진전의 사진보단 내 사진이 훨씬 더 잘 찍은 것 같다. 적어도, 초점을 맞추고, 노출을 조정하고, 조리개나 셔터 스피드를 맞추는 카메라의 기계적 관점에서는 내 사진이 훨씬 나아 좋아 보였다.


"예쁜 곳에서 비싸고 좋은 렌즈로  카메라의 조정을 조금만 잘하여 찍으면 당연히 예쁘게 나와야 하는 것 아니야?"라고 항상 말하던 사진하는 고교 동창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평균적 시각으로 사진을 봤을 때 "잘 찍었네, 멋있네~좋네~!" 하는 사회화 과정에서 길들어진 평균적 감정에서 나오는 사진평이다. 


이런 류에 속하는 내 이끼계곡 사진은 잘 찍은 사진은 될지언정 좋은 사진은 못 된다. 소위 말하는 폐부를 푹 찌를 듯한 함축의 의미를 닮은 그런 느낌은 없는 것이다. 얀 샤우덱의 작품처럼 "인간의 본성"을 끄집어 내주고, 브레송의 작품마다 나오는 "결정적 순간"이 전달해주는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롤랑 바르트는 이를  푼쿠툼 Punctum이라 함).


카메라 기능을  잘 조작하고, 셔터만 누르고, 오직 잘 찍은 사진에만 관심, 일반적 관점에서 사회 평균적 감정으로 사진을 해석 하려는 시각에(롤랑 바르트는 이를  스투디움 Studium 이라함) 대한 반성을 하는 동안 버스 유리창을 통해 한 회원의 손에서 빛이 들어온다. 


빛을 통해 스투디움을 깨고, 빛 받은 저 손으로 개인화된 시각을 담아보자. 이런 생각에서 열심히 손에 들어온 빛을 향해 셔터를 눌러댔다.  찍어놓고 보니 푼쿠툼을 느낄 수 없어 얼숲 친구가 걸어준 손에 대한 십계명을 사진에 덧붙여 푼쿠툼을 자극해 본다.



하나... 치고 때리는데 사용하지 않고 두드리며 격려하는데 사용하겠습니다.


둘... 상처 주는데 사용하지 않고 치료하는데 사용하겠습니다.


셋... 차갑게 거절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따뜻하게 꼬옥 잡아주는데 사용하겠습니다. 


넷... 오락이나 도박에 사용하지 않고 봉사하고 구제하는데 사용하겠습니다.


다섯... 비방하는 손가락으로 사용하지 않고, 격려하고 칭찬하는데 사용하겠습니다.


여섯... 받기만 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나누어 주는데 사용하겠습니다.


일곱... 투기와 착취에 사용하지 않고 성실히 땀 흘리는데 사용하겠습니다.


여덟... 뇌물을 주고 받는데 사용하지 않고 정직하게 행하는데 사용하겠습니다. 


아홉... 인터넷으로 음란물을 클릭하거나, 텔레비젼 채널을 돌리는데 사용하지 않고 내일을 위한 책을 잡는데 사용하겠습니다.


열... 놀고 먹으며 게으르지 않고, 공부하고 일하는데 사용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