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회적 네트워크, 혹은 소셜네트워크(social network)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네트워크가 모임이나, 학교일 수도 있고, 회사일 수 있다, 더 크게는 소속 되어 있는 정당이나 국가 일 수도 있다. 그 네트워크 구성원의 유대관계가 느슨하게 연결 되어 있던, 강하게 연결 되어 있던, 대부분의 네트워크는 권위를 강요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 유대 관계가 강한 네트워크 일 수록 이러한 권위에 대한 강요는 더 강하게 나타나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를 생각해보자. 회사라는 네트워크는 대체로 내가 속해 있는 기능부서가 해야 할 역할이 잘 정의 되어 있으며, 위계질서가 명확한 조직이다.만약 CEO가 각자 속해 있는 기능 부서에서 해야 할 일과 반하는 지시를 한다면, 이러한 권위에 도전하여 거부할 조직원이 있겠는가? 만약 그 지시가 정당하지 않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안타깝게도 아무리 조직에서 유능하고 촉망 받는 사람이라도, 그 권위에 도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 지시를 잘 수행 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보고 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할 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대우그룹의 비서실이나 회계부서는 분식회계를 하였으며, 삼성그룹의 비자금 사태, 2006년 정몽구 회장의 비자금 조성 등에 실무진이 깊숙이 개입하게 된다.
여기에 가담했던 실무진은 회사에서는 모두 유능하고, 인정 받는 인재였을 것이며, 가정에서는 다정 다감한 남편이고, 아버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자금 조성에 가담했던 대부분의 성실한 실무책임자들이 범죄 행위로 법정에 서는 모습을 우리는 방송이나 신문지상을 많이 보와 왔다.
이들은 왜 그랬을까? 이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기업회계 기준이나 법률에 위배 되는 일이지 아닌지를 누구보다 다 잘 아는 우수한 인재 들이다. 그런데 왜 이런 행위를 했을까?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심리학자인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에서도 증명 되었듯이 인간의 권위에 대한 복종 속성이고, 둘째는 권위에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조직의 시스템, 셋째는 행위자 본인의 행위에 대한 깊은 성찰 부족이 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기업에서만 나타나는 것일까? 아니다 정당이나 국가에서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 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 해 왔다. 예를 들면 80년 신 군부에 의해 저질러진 광주사태에 시민들을 향에 총을 쏘아 희생 시킨 군인 들을 생각해보자, 이들 모두 선량한 학생들이었을 것이고 청년 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역사적으로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든 역사의 주역이 되어 버렸다. 2차 대전 유대인 학살에 참여했던 평범한 군인들도 복종의 속성과, 시스템, 자기 행위에 대한 성찰 부족으로 역사적 죄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와 복종 실험에서 65%가 상대방에게 심한 고통을 줄 수 있는 450볼트의 버튼을 누르라는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복종하게 된다. 이들은 상대방의 심한 고통소리를 들으면서도 결국 버튼을 계속 누르게 된다.
65%는 복종을 선택 했지만 35%는 자기 행위에 대한 깊은 성찰 끝에 시스템적 강요를 이겨내고 누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 나머지 35%가 사회나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주역이 아닌가 싶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기존의 권위를 깨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가는 리더는 결국 나머지 35%에서 나올 것이다.
이 실험을 어떻게 볼 것 인가? 조직 생활이 삶의 일부인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일까? 현재 자기가 하고 있는 일과 행위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수행하고 있다면, 조직이나 사회에서 결국 성공 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조직의 장이나 사회의 지도자가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철학이 구성원의 행동 양식을 결정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에 대하여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같다.
지도자의 맘이 비자금 조성에 가 있으면 그 구성원은 죄의식을 갖지 않고 실험에서처럼 그 권위에 복종하여 비자금 조성에 적극 해동하게 된다. 일본 지진에 기꺼이 1300억원을 기부한 손정의씨나, 얼마 전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나의 부는 사회로부터 얻은 것이기 때문에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부자의 책무라고 말한 워렌버핏, 자신의 대부분의 재산을 기부한 빌게이츠 같은 사회 지도자를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지난 15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에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의결 시 기권해 여당의 의결 강행을 막은 홍성욱 의원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에 대한 EBS방송을 본 기억이 나 이 글을 쓴다. 이러 한 결정을 한 실제 본인의 깊은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당의권위에 정면으로 반하는 기권 표를 던지고 본인이 물리적 강행처리에는 동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킨 젊은 지성인의 행위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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